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 - 2017
라시드 할리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632050
보복 예고한 이… ‘키사스 원칙’에 커지는 5차중동전 위기감
■ 이란, 이스라엘 공습 파장 이, 이르면 오늘 보복 가능성 이란외부 무장세력 공격 유력 본토 군사시설 타격 가능성도 국제사회 반발에 제한적 전망 재보복 계속땐 전면전 우려도 이스라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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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다가 시작한 책읽기
시온주의 : 유대인들이 고대 유대국가가 있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민족주의 운동.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에 의해 시온주의자 대회가 개최되면서 국제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했다. 20세기에 들어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 민족들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시온주의를 지지한 영국에 의해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시온주의는 결실을 거두었으나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지속적인 군사적인 갈등이 야기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팔레스타인 토착 사회의 해체는 새로 만들어진 영국 위임통치 당국이 지지하는 가운데 대규모로 유입된 유럽계 유대인 정착민에 의해 촉발되었다. '히브리 노동자' 라는 구호 아래 유대인 소유 기업에서 아랍 노동자를 배제하고 해외로부터 막대한 양의 자본을 투입하면서 유대인이 지배하는 독자적인 경제 부문이 만들어졌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로 시온주의적 군사적 정치적 승리가 완성되었다. 원주민을 희생시키는 급진적인 사회공학은 모든 식민주의 정착민 운동이 구사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세력이 원주민의 의지를 짓밟고 다른 민족에게 그들의 고국을 내주도록 강요하기 위해 식민주의 전쟁을 벌였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문명적이고 진보적인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토착민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극악 무도한 모든 것들을 정당화 하는데 기여한다.
영국의 인도 총독의 "우리가 없으면 여러분은 할 수 없었습니다"
식민주의적 이론적 근거와 함께 유럽의 시온주의 식민화가 도래하기 전 팔레스타인은 황량하고 아무도 살지 않으며 후진적인 땅이었음을 입증하는데 골몰하는 수많은 문헌이 존재한다. 그들의 문헌에서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은 경멸적 묘사의 대상이었고 역사적 오류와 허위, 편견으로 점철된 역사적 가치가 없는 저술의 대상이 되었다. 그저 유목 생활을 하는 소수의 베두인족이며, 뚜렷한 정채성이 없고 떠돌이로 지내 땅에 대한 애착심이 없었다 주장한다.
"사람없는 땅을 땅 없는 사람에게 주자"
시온주의는 초기 영국에 대단한 지원을 받았고, 그 이후 식민전쟁은 계속되었으나 열강들의 암묵적 또는 명시적 승인과 직접 개입, 열강이 지배하는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의 승인을 받았다.
https://v.daum.net/v/20240415153527400
드론·미사일 다 격추됐는데…외신은 "이란의 대성공" 왜
이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밤 300기가 넘는 자폭 드론과 탄도·순항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방공체계)과 미국·영국 공군에 의해 99% 요격됐다. 이번 공습을 두고 다수 서방 언
v.daum.net
벨푸어 선언,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 인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다고 발표한 선언이다. -세계를 바꾼 연설과 선언 2006.-
로스차일드 경에게
저는 내각에 제출되어 승인된 유대 인의 시오니즘에 공감하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폐하의 정부를 대신하여 당신에게 전달하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폐하의 정부는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본거지를 팔레스타인에 수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에 현존하고 있는 비유대인 사회의 시민권과 종교의 권리나, 다른 국가에서 유대인들이 누리는 권리나 정치적 지위가 전혀 침해되지 않을 것으로 확실하게 믿습니다.
저는 당신이 이 선언을 시오니스트 동맹에 전달하길 바랍니다.
제임스 밸푸어 드림
벨푸어 선언에 보이는 로스차일드는 모두가 아는 그 로스차일드가 맞다.
이 선언은 사실상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겠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서신이다. 하지만 이미 밸푸어 선언 이전인 1915년 10월에 헨리 맥마흔이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전후 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하였다.
아랍민족이 영국군 정보 장교 토마스 로렌스(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와 함께 시리아와 요르단, 팔레스타인에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싸운 이유도 독립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사자 10만명을 내면서까지 영국에 협조했던 베두인족은 벨푸어 선언에 항의했으나 소용없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은 어느 누구와도 약속을 지키기 않았다.
다만 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건국돼 영국은 시일만 어겼을 뿐 벨푸어선언을 이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이 아랍 민족을 배반한 이유는 두 가지, 돈과 기술 때문이다.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대 자본이 영국의 전쟁공채를 사주지 않는다면 독일 동맹국들과 전쟁을 치르기 어려웠다. 포탄 제조에 들어가는 아세톤의 대량생산 기술을 유대인 과학자 차임 바이츠만(이후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한 배경이다.
이런 영국의 모순된 행동으로 결국 전 후 유대인세력과 아랍세력의 분쟁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